조선체육회가 지니고 있는 체육사적 의의

해방공간에서 조선체육회가 지니는 체육사적 의의를 알아보고자

조선체육회의 재건 및 스포츠 재건 활동에 대해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광복을 맞이한 조선의 체육계는 일제의 탄압으로 침체되었던 민족체육을 재건하고자

1945년 9월 5일 임시기구인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하여 기반을 조성하였다.

조선체육동지회는 이상백을 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체육인과 언론인 등 조선스포츠계의

권위자를 총망라해서 조직체계를 갖추었다.

조직은 총무위원, 평의원, 상무간사, 사무국장, 간사 등의 임원진을 구성하고 사무국 아래 총무부,

재무부, 기획부, 서무부, 연락부 등 5개 실무부서 구성하고 조선체육회 재건과 동시에

업무를 볼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다.

이를 기반으로 마침내 1945년 11월 26일 일제강점기부터 우리 민족 스포츠의 구심체 역할을 했던

조선체육회가 재건되었다.

조선체육회는 회장 여운형(제11대)을 중심으로 부회장, 이사장, 이사, 사무국장, 총무부장, 경기부장,

보건체육부장, 정보부장 등 1차 조직 구성을 마쳤다.

이후 해방공간시기 2차례에 걸쳐 조직 내용 및 임원을 재구성하여 총3차에 걸친 조직 개편을 단행하였다.

1946년 2월 1차 개편은 임원진 보강 및 초기 구성원들의 요구에 따라 체제의 형성,

1947년 5월 2차 개편은 임원진 개선의 의지의 표출, 1947년 11월 이후의 3차 개편은 임원진 공석에 대한

해결을 위해 단행된 것이었다.

조직의 개편을 통해 민족 스포츠의 구심체로서 그 체제의 기틀을 갖춘 조선체육회는 해방 이후

한국스포츠를 뒷받침하는 민족주의 체육론을 기저로 하여 체육을 통한 해방 정국의 안정화와

국민체육의 부흥을 도모하고 주권국가로서의 한국을 널리 알리고자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첫째, 조선체육회는 일본에 의해 중단되었던 전국체육대회를 부활시켰고

조선체육동지회가 주최한 1945년 해방경축기념종합경기대회를 포함하여

하계대회(3회), 동계대회(3회), 스키대회(2회)를 개최하였다.

이로써 동·하계의 완전한 종합경기대회로서 위상을 갖추며 현재까지 이어져

엘리트 선수의 보고(寶庫)이자 국내 최고의 경기대회로 자리매김 하는데 초석을 다졌다.

둘째, 스포츠 재건과정에서 스포츠정책 개혁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미진한 태도의

미군정 당국의 스포츠 정책을 지적하고 정책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서울운동장 개축기성회를 만들어 개·보수 사업을 추진하고 체육회 산하 단체주최 경기대회 수입 중

일부를 서울시에 체육시설비 명목으로 기부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고

각종 경기대회의 개최 및 국민체육을 부흥하기 위해 체육시설 기반을 조성하고자 하였다.

셋째, 조선체육회는 각종 체육행사를 주최하였다.

제51회 보스턴 마라톤대회 서윤복 선수의 우승 기념 환영회 열고 선수들의 노고를 위로하며

세계를 제패한 기쁨과 영광을 기념했다.

또한 조선올림픽위원회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으로 정식 승인받는데 공헌한

이원순 귀국 환영회를 주최하고 이원순, 고(故) 전경무, 스메드리 여사에게 공로상을 수여식을 거행하여

스포츠를 통해 국민들에게는 승리의 기쁨과 희망,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워 주었다.

그밖에도 조선체육회는 조선올림픽가(歌)를 제정·발표하여 한민족의 축전인 조선올림픽을 통해

젊은 조선의 모습과 새 나라건설의 의지를 다졌다.

이와 같이 해방공간에서 조선체육회의 재건 및 활동은 일제강점기 변질되고 침체되어 있던

한국스포츠의 재건을 통해 스포츠 발전의 근간을 마련하여 오늘날 스포츠 강국으로서 한국스포츠의

위상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스포츠 활동을 주도했던 조선체육회의 명맥을 잇고

현재까지 한국스포츠의 총본산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대한체육회로 이어지는 과정의

체육사적 전체상을 정립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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